책 자체를 많이 안 읽게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렸을 때는 자기 전에 읽던 소설책이 하루의 들뜬 마무리였는데.
책을 멀리한다- 라는 조금은 꼰대 같은 마음에서,
집 근처에서 한다기에,
친한 사람들도 함께 하기에,
SF 책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SF라면 스타워즈밖에 안 떠오르고 최근에 본 승리호만 떠올랐다.
넷플릭스에서 최애 애니메이션인 '우주의 전사 쉬라' 도 스쳐간다. ㅎㅎ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사전 지식 없이 시작한 모임에서 보물 같은 책이 벌써 생겨나고 있다.
바로
김보영 작가의 "얼마나 닮았는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지부터가 너무 예쁘다!
책 사정에 궁하다 보니까 새로운 작가들이나 책들을 모르고 살았는데
꽤 유명한 소설이기도 한가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중고생들도 많이 좋아한다고 한다.
한국 SF 소설이라고 읽은 게 처음이기도 했고,
둘 다 여성작가의 책이라 더 깊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둘 다 단편집이라 너무 몰입이 되다 보니
이야기가 금방 끝나고 새 이야기가 시작되는 게 심적으로 힘들 지경이었다. ㅎㅎ
김보영 작가님의 소설은
한마디로 시니컬했다.
그러면서 문장들은 꼼꼼하고 예뻐서
읽어 내려가기에 편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로그스 갤러리, 종로
두 작품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단편인데 이어지는 이야기다.
요새 웹툰 보는 느낌으로 재밌게 읽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제목을 따온
-얼마나 닮았는가
'보지 못하는 것'
'자신에게 지워진 정보'
를 찾아가는 AI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형 의체에 들어가 인간의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느껴간다.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것, 숨 쉬듯 만연하는 것. 인간의 모든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
비합리인 줄도 모르고 행하는 비합리,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없이 하는 잘못.
들추어내면 어리둥절해하다 못해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
반짝이는 표지 제목이 영롱한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관내 분실
이라는 단편이 가장 유명한 것 같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아주 젊고 따뜻한 소설이었다.
얼마나 닮았는가- 가 사실 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비판적이고 살짝 냉소적인 부분이
나의 생각 구조(?)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는데
김초엽 작가님은 진짜, 사랑을 나눠주는 느낌이었다.
인류애가 살아나는 소설이랄까.
인간과, 세상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건네준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주제는 놓치지 않는다.
어쩌면 고전적인 주제들이라 지루할 수도 있는 것을
SF라는 방식으로 아주 탁월하게, 극대화시켜 표현한다.
문체는 담담하고 딱딱한데,
느껴지는 것은 온통 사랑과 온정이라 신기했던 소설.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운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보건교사 안은영은 책은 읽지 않았지만,
드라마로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차가운 세상을 차가운 문체로 그려내지만
이런 세상 뭐하러 사나- 하는 한탄 대신에
씩씩하고 희망찬 하루가 보여지는 것.
정세랑 소설 중에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수 없어"
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고 하던데
놀라웠다! 온통 빛과 사랑이라니.
ㅎㅎ
책을 외면하고 살아도
따숩고 멋진 작가님들은 끊임없이
반짝이는 글들을 쓰고 계시는구나.
책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기쁜 에너지를 얻었다.
조금이나마 기운 내서 씩씩하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