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하루일기 & 독서 한장

추적이는 단비에 불꽃을 피우자 :: 추적단 불꽃의 우리, 다음

마고랑이 2021. 10. 1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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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지던 날들이 있었다.

 

복용하고 있던 수면제와 항우울제의 부작용이라고

애써 핑계되면서.

 

감당이 안 되는 감정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한때, 나는 그랬다.

 

쏟아지는 타인의 것들을 보고 들으며 

내가 가진 공포와 폭력의 기억들이 연결되어

 

내 경험처럼 생생하고, 

분노했고, 울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외면했다.

뭔가를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힘은커녕,

지켜보기에도 더는 숨이 가빠서

 

뉴스와, SNS와, 사람들 중 일부를 끊어냈다.

 

작은 세계에 문을 닫고

이것이 전부라 여기며

이곳은 안전하다 믿으며.

 

여전히

 

공중 화장실에 갈 때마다 수많은 구멍을 들여다보며,

렌즈를 발견하기 위해 곳곳에 빨간색 플라스틱을 플래시에 비춰보며,

어디선가 내 몸과 살들이 웹상에 떠돌고 있을까 걱정하며,

옳다고 믿는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이야기하기 힘들면서,

말하지 못하는 기억들에 휩싸여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을 뿐.

 

작년.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새에도

보이고 들려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환멸과 절망이기도,

희망과 용기이기도 했다.

 

2020년 공론화되었던

N번방에 대한 이야기다.

 

주먹을 꽉 쥐게 만드는

인간의 추악함이 경악스러웠지만.

 

그 뒤에 선

불과 단님, 추적단 불꽃이 

나에겐 끝내 안도였다.

 

 

추적단 불꽃 매거진 / 우리 다음

 

검은 표지에 흰글씨로 불, 흰배경에 검은 글씨로 꽃이라고 쓰여있다
추적단 불꽃 매거진 / 우리, 다음

 

 

추적단 불꽃.

 

저는 두 사람이 '추적' 일을 그만두기를 마음속으로 바랐습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차고 넘치게 한 것이라 생각했고 두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랐습니다.

-우리, 다음 매거진 중 / 수신지 작가님의 연대사

 

 

올 초에 '추적'을 계속하겠다는-

오히려 더 본격적으로 계속하겠다고 추적단 불꽃은 

매거진 / 우리, 다음을 기획했다. 

 

마침 나는 '추적단 불꽃 후원' 따위를 검색해보고 있을 때였고,

[우리, 다음] 매거진 텀블벅 펀딩에 참여할 수 있었다.

 

펀딩금에서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한 4월부터 6월까지

세 달 치 월급을 책정했다는데, 월 250만 원 이란다.

 

더 나은 세상과,

더 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과 단님 같은 분들이 

권력과 부를 거머쥔

주류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서글프고 우스운 생각이 스쳤다.

 

나도

이들에게 후원이라고 해봤자 코 묻은 정도인

서글프고 우스운 사람이었고,

 

후원자 연대사 중에 고미영 님의 말을 빌리자면

"추적단 불꽃이 내민 손을 우리는 그저 덥석, 잡기만 하면 되는"

작은 사람이었다.

 

 

매거진 표지 각각 앞뒤 표지
리워드로 받은 매거진

 

 

불과 단님이 펀딩 후에 매거진 후기도 찾아보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리워드를 받은 지 몇 개월 만에 타자를 치고 있는 이유는.

 

한 장 한 장이 참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서랍에 넣어놓고 한 달 넘게 꺼내지 못했었다.

 

 

 

매거진에서는

 

-온라인 그루밍 범죄

-몸캠 피싱

-다크 웹

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

하기 위한

불꽃의 '추적' 담겨 있다.

 

N번방은 이들에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매거진 16페이지 추척은 계속된다라는 소제목
추적은 계속된다

 

 

감히 이들에게 계속해주세요, 앞으로도 힘내주세요. 라는 말은

생각도 하지 못하겠다.

 

불꽃이 올해 '추적'한 디지털 성범죄의 사례들과,

피해경험자의 인터뷰

권김현영 활동가, 권인숙 국회의원

그리고 불과 단의 인터뷰가 구성되어 있었다.

 

추적단 불꽃의 기획과 활동에

벅차고, 감사하고...

 

누군가의 경험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나고.

 

매거진을 읽으며 또

'이유 없는' 눈물이 났다.

 

울며 한 장을 넘기니

녹색의 간지에 쓰인 말은

 

 

녹색의 종이에 아래 인용문이 쓰여있다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작년에 추적단 불꽃의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제목이 생각났다.

 

두통이 일상인 나에게

 

이럴 땐 머리가 아닌

가슴이 아파오는 게

참 신기하다.

 

우리, 다음

 

그래 다음.

 

우리는 1초, 1분, 하루, 한 달

죽지 않는 한 다음으로 발을 내딛을 수밖에.

누구의 죽음을 뒤로하고.

 

세상이 나아지고 있는지,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제자리로 돌아오는 질문 속에서

 

더하고 빼고

결국 '0' 제로로 수렴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에게

추적단 불꽃은 희망을 느끼게 했다.

 

 

뭐가 달라질지 솔직히 저는 몰라요. 더 나아질 수 있고 나빠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하나는 달라져요.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건 안 해도 되거든요. 이제 다음 고민과 질문으로 건너가는 것이죠. 그건 진짜 큰 진전이에요.

다음 질문이 더 아플 수도 있지만 적어도 똑같은 질문에 붙잡혀 있지는 않아도 되죠. 그러니까, 뭐든지 일단 해 보세요. 

아마 그 다음 이야기는 또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다음 / 인터뷰 3. 복잡한 상황을 복잡하게 다루는 능력 /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언제나 불꽃에 기대어 있다는 연대사
후원자 연대사

 

 

+덧) 

함께 리워드로 받은 뱃지와 스티커, 그립톡 잘 쓰는 중.

 

녹색 케이스에 붙여진 스티커
갤탭 케이스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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