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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의 목소리를 드릴게요 :: 낙관과 온정이 듬뿍 담긴 SF 단편집

마고랑이 2021. 9. 1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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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SF 소설을 읽고 있는 요즘. 드디어 정세랑의 소설집을 접했다.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알게 된 작가 정세랑. 다시 책을 집어 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동안 신간이나 베스트셀러에 대해 무지했다. 신인 작가들은 더욱 그랬다. (정세랑을 신인이라고 해도 될는지ㅎ) 

 

그럼에도 정세랑이라는 이름은 꽤나 익숙했는데, 그만큼 추천을 많이 받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은영을 접하면서, 안은영이라는 인물이 나의 시니컬함으로 포장한 무기력한 인생관을 꾸짖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관심이 생겼고 이번 소설인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고 난 뒤에는 그녀가 내가 책을 읽지 않아도 들려올 만큼 유명한 작가라는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작가로 밥벌어먹기 힘든 세상에서, 작가로 밥벌어먹고 있을 정도의 작가여서 다행스러웠다. 남의 생계를 걱정하는 이상한 마음에서 그런 게 아니라- 자본의 논리 안에서도 이러한 따수움이 대중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랄까. 

 

10대, 20대 할 것 없이 이러한 따수움을 추천하고 싶다.

 

정세랑작가의 목소리를 드릴게요 책을 한손으로 들고있는 사진
정세랑 소설집

 

2010년부터 집필한 단편들을 엮은 단편 소설집이다. 직전에 읽었던 소설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 차일드' SF 단편집이었는데 시대의 차이도 있겠지만, 역시 번역서보다는 국내 소설이 더 빠르게 읽히는 장점이 있었다. 2시간? 3시간? 정도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아작 출판사에서 나왔고. 표지는 채도가 높은 산호색으로,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소재가 그려져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누군지 가늠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주 금방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장하고 싶은 분류의 디자인은 아니었으나, 통통 튀는 이미지를 잘 표현한듯 보인다. 

 

  목차는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11분의 1

-리셋

-모조 지구 혁명기 

-리틀 베이비블루 필 

-목소리를 드릴게요 

-7교시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과 비슷하게 인류애가 느껴지는 소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인류의 잔혹함, 오만함을 꼬집으면서도 희망차고 따뜻하다. 

 

  낙관이 깨어나는 작품 

어떤 단어보다도 '낙관'이라는 말을 잘 표현하는 작가이지 않을까 싶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의 서사를 싫어하는 내가 그와 같은 서사를 가진 '리셋'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꾸짖는다는 것은 애정이 기반해 있기 때문일까. 리셋은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는 정세랑의 대멸종과 종 차별, 윤리와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봐 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문명이 잘못된 경로를 택하는 상황을 조바심 내며 경계하는 것은 SF 작가들의 직업병일지 모르지만, 이 비정상적이고 기분 나쁜 풍요는 최악으로 끝날 것만 같다. -작가의 말 <리셋> 편 

 

이렇듯 정세랑은 '역겨울만한 인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코 인류를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속에서 인류의 절반 이상을 죽여버리더라도 말이다. 그것도 거대 지렁이에게! 

 

그것은 꽤나 나에게 낯선 경험으로 다가왔다. 보건교사 안은영에게서 느꼈던 바로 그 낯섬이었다. 경멸과 낙관이, 절망과 희망이 함께 품을 수 있던 것이었던가? 

 

'어차피 지구는 망할꺼야' , '내가 뭘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 '앞으로의 미래가 막막한' , '그냥 포기해' 같은 냉소적이고 시니컬함이라고 생각했던 내 성격은 사실 그저 무기력하고 게으른 것이라는 걸 안다. 사랑으로 품을 수 있을 만큼, 희망차고 낙천성을 대표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가진 마음이 쫌생이 같아서 그런 것인 것처럼. 

 

그래서 소설이나, 미디어, 게임 속의 서사들도 당연히 절망적이고 파괴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을 편하게 느꼈다. 그 안에서 주인공들은 무엇보다 비현실적이라 그들이 품는 용기과 희망 또한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그저 픽션 속에 존재해 익숙하고 말고도 필요 없는.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정세랑의 소설은 나에게 현실이기에 익숙하지 않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인물들이 품는 희망과 사랑이 그래서 이상했다. 결국에는 함께 응원하게 되고, 또 이러한 느낌에 중독이 되어가는 듯 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정세랑의 소설 같다.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읽었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표지를 선점했던 '목소리를 드릴게요'가 가장 길고 번뜩이기는 했다. 인어공주를 오마주한 귀엽고 두근거리는 소설이었다. 물론 이것을 먼저 추천하지만 나는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를 꼽았다. 

 

한때 좀비물의 덕후이기도 했던 좀비 매니아로써 좀비가 나온다는 것으로 먼저 가산점! 2010년에 나온 소설이긴 하지만, 21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코로나 시국이 떠올려지기도 하고, 양궁 메달리스트를 꿈꾸는 선수의 이야기로- 안산 선수가 떠올려졌다. 이 작품이 책의 마지막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아까 말한 '마지막 장 까지도 정세랑 소설 같은' 게 무엇인지 읽고 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단락글
정세랑 작가의 말

 

 

작가의 말에 쓰여진

 

'세계는 더디게 더 많은 존재들을 존엄과 존중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는다. 너무 늦지만 않으면 좋겠다.'

 

라는 마지막 단락에 나도 마음 하나를 더 얹으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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